🎬 대하소설 《푸른 고삐와 거인의 왕관 — 대하소설 <푸른 고삐와 거인의 왕관> — 제4회: 푸른 말의 맥박과 얼어붙은 강물》 16:9 시네마틱 하이라이트 영상
대하소설 <푸른 고삐와 거인의 왕관> — 제4회: 푸른 말의 맥박과 얼어붙은 강물
대하소설 《푸른 고삐와 거인의 왕관 — 삼성 이재용편》 | anchangseongbank.blog
대하소설 <푸른 고삐와 거인의 왕관> — 제4회: 푸른 말의 맥박과 얼어붙은 강물
경기도 과천의 이른 아침은 언제나 차가운 물안개와 함께 시작되었다. 관악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습한 공기가 승마장의 모래판 위로 흩어질 때, 마구간 특유의 맵싸한 암모니아 냄새와 바싹 마른 짚단, 그리고 반질반질하게 닦인 말가죽의 비릿한 향취가 청년 이재용의 콧등을 세차게 때렸다. 서울대학교 인문대 교정의 최루탄 가스에 절어 있던 허파가 이 낯설고 거친 야생의 냄새를 들이마실 때마다 청년은 비로소 자신이 살아 있음을, 그리고 세상이 억지로 씌워놓은 황태자의 외투를 잠시나마 벗어던질 수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마구간 가장 깊은 곳, 어둠침침한 칸막이 너머로 육중한 그림자가 서서히 움직였다. 몸무게가 육백 킬로그램에 달하는 단단한 가슴팍과 밤나무 빛깔로 윤기가 흐르는 강인한 목덜미를 지닌 명마 선웨이였다. 선웨이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청년의 발소리를 듣자마자 콧구멍을 팽창시키며 신경질적인 날숨을 뿜어냈다. 푸르르거리는 그 소리에는 인간에 대한 강한 경계심과 길들여지지 않은 야성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삼전 가문의 미래이자 수십만 명의 운명을 짊어질 상속자라는 거창한 배경 따위는 이 눈먼 짐승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선웨이의 커다란 검은 눈동자에는 그저 자신을 억누르고 지배하려 드는 또 한 명의 오만하고 미숙한 인간이 비칠 뿐이었다.

처음 선웨이의 등에 안장을 얹고 고삐를 쥐었던 날, 청년은 자만했다. 조부의 엄격한 가늘 밑에서 자라며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고, 대학 교정에서 치열한 역사학을 공부하며 인간의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다고 믿었기에 고작 짐승 한 마리 다스리는 것쯤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가죽 채찍을 가볍게 휘두르며 철 고삐를 팽팽하게 죄어 쥐었을 때, 선웨이는 그 오만한 지배를 비웃기라도 하듯 순간적으로 온몸의 근육을 강철처럼 팽팽하게 굳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말이 앞다리를 허공 높이 치켜들며 몸을 비틀자, 청년의 몸은 나뭇잎처럼 허공으로 붕 떴다. 둔탁한 파열음과 함께 이재용의 몸뚱이가 차가운 모래바닥 위로 사정없이 내팽개쳐졌다. 허리께에서 척추를 타고 뇌수까지 이르는 극심한 통증에 숨이 턱 막혔다. 입안 가득 승마장의 붉은 모래와 비릿한 흙먼지가 씹혔고, 셔츠 깃 너머로 모래알들이 사정없이 흘러들었다. 깜짝 놀란 대원들과 조교들이 비명을 지르며 사방에서 달려왔다. 도련님! 괜찮으십니까! 서둘러 청년을 부축하려는 손길들이 뻗쳐왔을 때, 이재용은 짓이겨진 흙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단호하게 소리쳤다. 오지 마! 아무도 가까이 오지 마라!
청년의 목소리에는 평소의 온화함은 온데간데없고, 짐승에게 정면으로 거부당한 한 인간의 날 것 그대로의 분노와 수치심이 묻어났다. 그는 흙탕물 범벅이 된 승마 바지를 털어내며 비틀거리는 다리로 겨우 일어섰다. 입술 틈새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모래 먼지와 섞여 흘러내렸다. 저만치 서서 자신을 조롱하듯 콧방귀를 뀌는 선웨이를 쏘아보는 그의 안경 너머 눈빛이 파랗게 번뜩였다. 채찍을 다시 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그러나 그날 이후로도 추락은 계속되었다. 매일 아침 안장에 오를 때마다 선웨이는 청년과 보이지 않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벌였다. 왼쪽 무릎은 가실 날 없이 퍼렇게 멍들었고, 허벅지 안쪽 살갗은 거친 가죽 안장에 쓸려 진물이 흐르고 딱지가 앉기를 반복했다. 밤마다 한남동 자택의 서재에 홀로 앉아 쓰라린 몸에 연고를 바를 때마다 이재용은 깊은 회의감에 젖어 들었다. 나는 과연 수많은 사람을 이끌 리더가 될 자격이 있는가. 고작 이 말 한 마리의 마음조차 얻지 못하면서, 어떻게 그 복잡하고 거대한 삼전의 수많은 인재와 세상을 품겠다는 말인가. 조부 이병철이 마지막으로 쥐여주었던 역사라는 차가운 거울이 그의 머릿속에서 날카롭게 깨지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기어이 장대비가 내리치던 어느 여름날 저녁, 승마장의 모든 조명이 꺼지고 고요한 정적만이 마구간을 채웠을 무렵이었다. 비에 젖어 으슬으슬 떨리는 몸을 이끌고 이재용은 홀로 선웨이의 칸막이 앞으로 다가갔다. 손에 들고 있던 가죽 채찍과 날카로운 박차를 바닥에 툭 던져버렸다. 무기가 사라진 손을 가만히 내밀어 선웨이의 젖은 콧등에 가져다 대었다. 말이 사납게 고개를 저으며 청년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이재용은 피하지 않고 제 이마를 선웨이의 따뜻하고 축축한 이마에 슬며시 맞대었다. 그리고 말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미안하다. 내가 눈이 멀어 너를 내 힘으로만 억누르려 했구나. 내 가문의 배경이, 내 오만함이 너를 아프게 했구나. 나도 무섭단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세상이 나에게 기대하는 그 무거운 시선들과, 내가 감당해야 할 거대한 미래의 무게가 너무나 두렵고 외로워. 그러니 제발 나를 도와다오. 지배자가 아니라, 네 길동무가 되게 해다오.
청년의 나직하고 절박한 음성 뒤로 굵은 빗방울이 슬레이트 지붕을 사정없이 두드리는 소리만이 길게 울려 퍼졌다. 그 순간, 거짓말처럼 선웨이의 거친 날숨이 멈췄다. 말은 귀를 쫑긋 세우며 제 이마에 닿은 청년의 떨리는 온기를 가만히 받아들였다. 그리고 온순하게 눈을 깜박이며 청년의 어깨에 제 묵직한 턱을 가만히 얹었다. 말의 거대한 척추뼈를 타고 흐르는 깊은 심장 박동이 청년의 가슴속으로 전율처럼 흘러들었다. 그것은 힘과 권력의 억압이 아닌, 영혼과 영혼이 맞닿은 최초의 신뢰였다. 다음 날 아침, 채찍과 박차를 완전히 배제한 채 안장에 오른 청년은 고삐를 아기 살결을 만지듯 아주 부드럽고 미세하게 쥐었다. 다리 끝의 미세한 근육 수축만으로 신호를 보내자, 선웨이는 마치 청년의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우아하고 경쾌하게 모래판 위를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말이 춤을 추듯 제자리에서 발을 구르는 피아페 동작을 성공시키는 순간, 청년의 눈가에는 참아왔던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렸다. 198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마장마술 경기장에서 태극마크를 달고 은메달을 목에 걸던 그 찬란한 순간에 이재용이 느꼈던 것은 단순한 승리의 기쁨이 아니었다. 그것은 힘으로 억압하는 군림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읽고 보이지 않는 신뢰의 줄을 쥐고 조율하는 따뜻하고 조용한 리더십의 위대한 탄생이었다.

그러나 청춘의 우아한 질주도 잠시, 서울대학교를 졸업한 이재용에게는 바다 너머 일본 게이오기주쿠대학교를 거쳐, 마침내 전 세계 천재들의 가혹한 생존 경쟁터라 불리는 미국 보스턴의 하버드대학교 경영대학원 박사과정이라는 잔인한 연단의 장이 기다리고 있었다. 보스턴의 겨울은 관악산의 최루탄 안개보다 훨씬 더 시리고 매서웠다. 찰스강이 꽁꽁 얼어붙어 하얀 얼음 벌판으로 변하고, 가시 돋친 겨울바람이 벽돌담 사이를 후벼 파며 비명을 지르던 날, 붉은 벽돌의 하버드 교정은 온통 은빛 눈보라에 갇혀 있었다. 청년은 한남동 저택의 화려한 리무진도, 아버지가 구축해 놓은 거대한 제국의 후광도 모두 이곳 보스턴의 낡은 철제 침대 밑으로 묻어버렸다. 기숙사 방은 좁고 살풍경했다. 책상 위에 놓인 초록색 유리 갓의 뱅커스 스탠드 불빛만이 밤새 고독한 청년 사학도의 수척해진 뺨을 쓸쓸하게 비추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하루하루는 그 자체로 매 순간 뼈가 깎여 나가는 듯한 압박감의 연속이었다. 매주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글로벌 기업들의 실패 케이스를 읽고 분석해야 했고, 날카로운 교수들의 무자비한 콜드 콜 질문에 대비해야 했다. 원형 계단식으로 둥글게 늘어선 아흔 명의 동기들은 저마다 아이비리그를 졸업하고 월스트리트와 매킨지에서 잔뼈가 굵은, 자존심과 야망으로 똘똘 뭉친 괴물들이었다. 그들 사이에서 조용하고 온화한 동양인 청년 이재용은 그저 돈 많은 아시아 재벌 가문의 유약한 도련님 정도로 치부되기 십상이었다. 수업 시간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쏟아지는 냉소적인 눈빛과 보이지 않는 무시의 공기가 강의실의 히터 바람보다 더 차갑게 청년의 가슴을 후벼 팠다.
전략 경영 수업 시간, 아시아 철강 산업의 구조조정과 세계 시장의 변화를 다루던 날이었다. 칠판 앞에 선 로버트 교수는 매서운 매의 눈빛으로 아흔 명의 학생들을 천천히 훑어내렸다. 강의실 안은 침을 삼키는 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만큼 팽팽한 정적이 흘렀다. 교수의 손가락이 허공을 가르더니 마침내 맨 뒷자리에 앉아 있던 이재용을 정확히 가리켰다. 미스터 이, 삼전의 아들이자 역사학을 전공했다는 자네의 의견을 듣고 싶군. 미국의 거대 철강 공룡들이 왜 일본과 한국의 신생 기업들에 밀려 처참하게 무너졌는지, 자네라면 어떤 구조조정 카드를 꺼내 들겠나?
동기들의 고개가 일제히 재용을 향해 돌려졌다. 그들의 눈빛에는 그래, 어디 돈 많은 집안 자식의 알량한 지식수준 한번 구경해 보자는 식의 잔인한 호기심과 냉소가 가득 배어 있었다. 재용은 마른침을 삼켰다.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 것처럼 건조해졌고, 셔츠 등덜미가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어 들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할아버지가 혜화동 서재에서 쥐여주었던 역사책의 낡은 종이 냄새와, 과천의 진흙탕 속에서 온몸으로 체화했던 선웨이의 고삐였다. 그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안경을 한번 치켜올린 청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한 옥타브 낮았지만, 흔들림 없이 강의실의 사방 벽을 단단하게 울렸다.
미국의 철강 기업들이 무너진 것은 단순한 설비의 노후화나 인건비 상승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역사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보여주는 인간의 오만함과 신뢰의 상실 때문입니다. 그들은 기술의 숫자에만 매몰되어, 현장에서 뜨거운 쇳물을 붓는 노동자들의 피땀 젖은 신뢰를 소홀히 다루었습니다. 기업의 본질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당장의 재무제표를 맞추기 위해 노동자들을 부품처럼 잘라내는 식의 구조조정은 단기적인 인공호흡기에 불과할 뿐, 결국 기업의 장기적인 생명력을 완전히 좀먹는 독약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칼을 휘두르는 구조조정이 아니라, 경영진과 노동자가 다시 마주 앉아 가슴속의 불신을 씻어내고 새로운 제조 기술을 향해 함께 뛰게 만드는 신뢰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일입니다.
재용의 언어는 유창한 경영학 용어로 도배되지 않았지만, 그 안에는 서울대 사학과 시절의 깊은 역사적 성찰과 일본 게이오대에서 체득한 치밀한 제조업의 장인정신, 그리고 승마장 바닥에서 배운 조율의 지혜가 고스란히 정제되어 흐르고 있었다. 아흔 명의 천재들이 모여 있던 강의실 안은 순간 거짓말처럼 깊은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의 눈빛에서 조금 전까지 흐르던 조롱과 냉소는 연기처럼 사라지고, 한 인간의 사색에 대한 진정 어린 경외심이 싹트기 시작했다. 로버트 교수는 조용히 안경을 벗어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아주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나지막하게 감탄했다. 미스터 이, 자네는 단순히 경영을 배우러 온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을 경영하는 법을 알고 있군. 아주 훌륭한 통찰이네.

수업이 끝나고 기숙사로 돌아오는 길, 장대하게 쏟아지는 보스턴의 흰 눈은 청년의 발자국을 금세 지워버렸다. 좁고 차가운 방 안에서 이재용은 낡은 양은 냄비에 물을 붓고 가스버너의 불을 켰다. 한국에서 비행기 편으로 보내온 매운 신라면 한 봉지를 털어 넣고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붉은 국물을 바라보며, 그는 붉어진 눈으로 한참 동안 창밖의 얼어붙은 찰스강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머나먼 이국땅의 푸른 고독 속에서, 그는 매일 밤 쏟아지는 잠을 쫓아가며 새벽 네 시까지 책장의 모서리를 피가 나도록 꽉 쥐었다. 내가 무너지면 아버지의 제국이 무너지고, 나와 어깨를 맞대고 라면을 끓여 먹던 을지로의 동기들과 공장 엔지니어들의 삶이 흔들린다. 그 무시무시한 책임감이 그의 심장을 매일 밤 무자비하게 짓눌렀지만, 청년은 도망치지 않고 그 푸른 고독을 기꺼이 정면으로 들이마셨다.
그 뼈를 깎는 밤샘 공부의 대가로, 그는 마침내 하버드 경영대학원 박사과정 역사상 아시아인 최초 최고 학점이라는 경이롭고 위대한 성적표를 움켜쥐게 되었다. 하지만 그에게 더 소중했던 것은, 이때 형성된 전 세계 1%의 엘리트들과 격의 없이 토론하고 협상할 수 있는 독보적인 글로벌 마당발 인맥이자, 향후 거대한 삼전의 고삐를 쥐고 세계라는 폭풍우 속으로 나아갈 날카롭고 단단한 거인의 안목이었다. 1991년 12월, 기나긴 유학과 모진 고독의 연단 과정을 모두 끝마친 청년 이재용은 마침내 조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의 낡은 가죽 가방 안에는 최고 학점의 졸업장과 함께, 남들과 똑같이 시험을 보고 면접을 치러 당당히 받아든 삼성전자 공채 32기 사원증이 단단히 놓여 있었다. 찰나의 영광을 뒤로하고, 이제 왕관을 향한 서른한 해 동안의 거대하고 외로운 진짜 대장정이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 서서히 그 위대한 서막을 올리고 있었다.

대하소설 《푸른 고삐와 거인의 왕관 — 삼성 이재용편》 연재 안내
본 연재 소설은 anchangseongbank.blog에서 독점 공개됩니다.
[카테고리: 대하드라마]
❤️ 이 분석 리포트가 유익하셨나요?
좋아요를 누르고 이메일을 구독하시면 신규 매크로 분석 & 대하소설 발행 시 이메일함으로 즉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소중한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이메일 주소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 항목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댓글 남기기